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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8] 인류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창세기 3장9~21절)

본문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후,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疎外)가 발생했습니다. 첫째, 인간은 벌거벗은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수치심을 느껴 나뭇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7). 자신으로부터 소외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숨었습니다(10).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입니다. 셋째, 인간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 지배하려고 합니다(12~13, 16). 타인으로부터 소외입니다. 넷째,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고통을 주고받습니다(18). 다른 피조물로부터 소외입니다. 다섯째,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19). 생명으로부터 소외입니다. 소외된 인간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희망이 생깁니다. 첫째, 하나님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숨은 인간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9). 숨바꼭질 놀이에서 숨은 아이는 술래가 다가올 때 긴장감을 느낍니다. 발견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안도감도 있는 법입니다. 숨은 아이를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숨바꼭질은 잔인한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숨은 인간을 찾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낯(얼굴)”(8)을 피해 숨은 인간에게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인간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과 은혜와 평강을 구한다는 뜻입니다(6:25~26). 하나님의 부르심과 질문에 정직히 설 때, 인류에게는 희망이 생깁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 선언에는 놀라운 은혜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뱀에게 하신 저주 선언(14~15)에는 메시아(여자의 후손, )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내린 심판(16~19)에는 서로 지배하려는 욕망, 출산의 고통과 수고의 땀이 있지만, 그 가운데 자녀를 낳고 일하고 행복을 누리는 축복을 담고 있습니다. 아담은 여자의 이름을 하와’(생명)로 지었습니다(20).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축복을 표현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21). 옷을 입힌다는 것은 생명을 주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옷을 입혔고, 형들은 요셉을 미워해 옷을 벗겼습니다(37). 시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자신을 바라보면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숨은 인간을 찾아오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만이 인류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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