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31] 담대한 소망: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기를! (고린도후서 3장12~18절)
본문
사도 바울은 외부의 핍박과 교회 내부의 비난에 굴하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교회가 복음 사역에 동참하길 원했습니다(고전16:6). 그가 이토록 복음을 전하는 데 목숨을 건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만이 참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16~17절).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으로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율법의 말씀을 다 전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출34:30~33). 바울은 지금도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그 수건이 유대인에게 덮여 있다고 해석합니다(고후3:14~15). 이 해석은 바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복음을 배척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헬라인)는 받아들였습니다.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수건이 얼굴에 덮여 있어서’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습니다(행9:18). 말하자면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복음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기 때문입니다(고후3:18). 바울은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롬8:29~30, 갈4:19). 바울은 이를 “우리의 소망”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적 “소망”은 단순히 바라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실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 자유인으로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에 바울은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한남교회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그것은 ‘영광’에 관한 소망입니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고 변화하는 것에 관한 믿음의 소망이 있습니까? 오직 복음만이 우리에게 담대한 믿음의 소망을 줍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고 복음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만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고후2:17, 4:2) 거짓 교사들이 사라져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담대한 소망을 가지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린도후서를 보낸 것입니다. “♫ …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 주님의 마음 닮아서 …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되신 주님을 전하는 교회 … ♪”(CCM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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