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7] 우리는 보배 담은 질그릇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
본문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보배 담은 질그릇’으로 묘사했습니다. ‘보배’는 찬란히 빛을 발하는 ‘복음’ 혹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4, 6절)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복음의 빛이 퍼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일은 인간의 잘남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탁월함과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겨 쌈을 당한’ 것 같은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답답한 일’도 만났습니다. 피신할 수밖에 없는 ‘박해’도 받았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한’ 것 같은 비참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1절, 8~9절). 질그릇이 깨어지고 금이 가면 그 안에 담긴 보배의 빛이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약한 자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임을 확신했습니다(15절).
하나님은 왜 기드온과 삼백 명을 사용했습니까?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군대와 싸우기 위해 몰려든 사람을 다 돌려보내고 삼백 명만 남겨두셨습니까? 그들에게 왜 최신 무기 대신 나팔과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들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삿7:2). 삼손은 언제 하나님의 손에 크게 사용 받았습니까? 그에게 힘이 있을 때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잘리고 두 눈이 뽑힌 상황에서입니다(삿16장). 바울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육체의 가시가 너무 괴로워 그 가시가 떠나게 해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신의 ‘약함’에 대해서 자랑합니다(고후12:9).
설립 70주년을 맞은 한남교회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교회의 역사? 교회의 규모? 교회의 경제적 능력,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들? 담임 목사? 힘 있는 정치인이나 큰 기업 사장님과 같은 유력 인사가 있음? 교회의 자랑은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영광 받으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의 좌우명’처럼, 우리는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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