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30] 주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영생 (요한복음 17장 1~5절)
본문
유월절 저녁 식사와 제자의 발 씻김, 그리고 고별 설교 후(13장~16장),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17장). ‘대제사장의 기도’의 중심 단어는 ‘영광’(영화)과 ‘영생’입니다. 다락방 고별 설교도 ‘영광’으로 시작합니다(13:31).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절)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정적인 순간이 왔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요3:16). 믿는 자는 예수님에게서 ‘아버지가 독생자에게 주신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요1:14).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장 비참한 죽음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왕의 보좌에 앉히셔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2절).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19:19~20)이란 팻말을 걸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자/왕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내세에서 누리는 영원히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주시는 영생은 지금 이 땅에서 누리는 것입니다(3절, 3:16, 5:24, 6:47).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연합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창4:1, 눅1:34, 요15:9). 그것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 주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15:9, 요일4:7~8). 영생은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요5:39~40, 6:54).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전도가 안 되고, 교세가 약해지고,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는 것입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성도들이 간절히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지 않고, 주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데 힘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주님이 믿는 자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영생’이며,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귀하고 축복된 일은 없습니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 예수를 앎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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