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03] 복음: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11, 19절) > 목회자 컬럼


[26.05.03] 복음: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11,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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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3:23)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사랑”(4:8, 16)이라고 천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선언을 진부하게 여기지만, 당시에는 매우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인간을 마음대로 다루는 폭군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들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고 제사하며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기 전 신이 인간을 먼저 찾아와 사랑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선언을 풀어 놓은 것이 410절의 말씀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는 복음을 말한 뒤, ‘사랑은 여기 있다!’라고 외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참고, 5:8). 따라서 복음을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4:11). 그리고 서로 사랑의 당위성을 선명하게 풀어 설명한 것이 4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라는 메시지는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바꿉니다. <고백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의롭게 되기 전 하나님이 먼저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자신이 구원을 위해 일하기 전 하나님이 앞서 행하셨다고 고백합니다(참고, 8:29~30). 사람들은 이런 고백으로부터 나온 예정론을 오해해서, 예정론은 하나님이 자기 멋대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버리는 폭군으로 만드는 교리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비판은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깨닫고 체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행복한 고백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먼저, 이미 일하고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구원의 길을 스스로 찾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찾아진 자라고 고백합니다(찬송가 3051절 영어 가사,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한때 나는 잃어버렸지만, 이제는 찾아졌네”). 복음은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능력 있게 만듭니다. ‘복음과 사랑은 언제나 함께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먼저사랑을 이미 충분히 받았기에, 사랑을 받으려 하기보다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먼저사랑해야 서로사랑은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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