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2] 무덤으로 달려간 그들은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10절)
본문
사랑하는 예수님을 애도하기 위해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입구의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주님의 무덤이 도굴당했다는 생각에 다급히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마리아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도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도착해 무덤 안에 세마포가 놓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곧 도착한 베드로는 망설임 없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그대로 놓여 있고,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머리를 쌌던 형태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본 이 광경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느 도굴꾼이 값비싼 세마포와 향품은 놓아두고 시체만 가져갑니까? 머리를 쌌던 모양 그대로 수건을 놓아둘 수 있습니까? 주님의 시신은 도난당한 것도, 주님은 깨어난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아직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부활의 흔적만을 보고 믿는 첫 번째 복된 신자가 되었습니다(1~10절, 29절). 사실 네 복음서는 모두 ‘빈 무덤’을 주님 부활의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 부활절 경험은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내용 안에 깊이 배여 있습니다. 바울은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케리그마)을 언급합니다(고전15:3~4). 복음의 중심에는 주님의 육체적 죽음과 육체적 부활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대속적 죽음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대제사장의 부추김을 받은 군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군병을 시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예수님에게 가시면류관과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 초라한 예수님을 군중 앞에 세우고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19:5).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렸습니까?)라고 고통스럽게 외치셨습니다. 주님은 타는 목마름을 느끼시며 조롱의 신 포도주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일반 역사가들이 말한 대로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 조금 미화해서 ‘정의로운 죽음’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죄를 위한 대속적인 것임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로만 입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주님의 대속적 죽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 다해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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