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11]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 13장 8절)
본문
사도 바울은 빚진 자라는 채무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증인이었고, 나사렛 예수교라는 이단을 핍박하는 일에 찬성 투표를 던졌고, 대제사장에게서 그들을 처단하는 자격을 받아 조직적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그를 만나셨습니다. 바울은 현재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은혜’라고 고백합니다(고전15:9~10). ‘은혜받음’은 ‘사랑의 빚짐’을 뜻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졌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은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이기에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 [NIV]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고 권면합니다.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것은 ‘빚진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갚으라’는 뜻입니다. 물론 사랑의 빚은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기에 예외입니다.’ 빚을 갚는다는 것은 꾸어준 자를 배반하지 않는 신실한 행위입니다. 빚지고 못 갚겠다고 하는 것은 악한 태도입니다. ‘사랑의 빚’도 갚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빚은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불멸의 부채(immortal debt)’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을 때까지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마음으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롬1:14). 그는 자신이 계시로 받은 십자가의 복음을 로마 교회도 믿는지 확인하고, 그 십자가 사랑의 복음을 더 풍성히 나누고, 로마 교회의 파송을 받아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사랑의 빚을 갚고 싶었던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바울과 같은 채무 의식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라는 의식, 복음에 대해 빚진 자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 진 복음과 사랑의 빚은 타인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 왔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는 전도의 열매를 가득 맺길 원하며, 전도 축제를 열고자 한다. 전도하는 일은 교회의 외적 부흥을 위해 사람의 숫자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로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빚을 갚지 않는 배은망덕한 짓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최고의 사랑 행위로서 사랑의 빚을 갚는 길입니다. 채무 의식을 가지고, 먼저 ‘전도 대상자’를 품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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