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8]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 1~11절)
본문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께 왔습니다(요3:1~15)
바리새인이며 유대 지도자(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생각이 깊고 신중한 그가 대낮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구원)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은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엡2:1~5). ‘거듭남’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이며,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이는 신비에 속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니고데모는 언제 거듭남(구원)을 경험했습니까? 그가 개인적으로 처음 주님을 만난 때입니까(요3:1~15)? 성경은 명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열두 제자처럼 예수님을 따라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에 두 번 더 등장합니다. 한번은 유대 당국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입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체포해 처벌하려는 일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7:50~51). 또 한번은 아리마대 요셉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장사하려 할 때, 니고데모가 엄청난 양의 장례 물품을 가지고 와서 도왔습니다(19:39~40). 3장에서 니고데모의 얼굴에 아직 어둠의 수건이 덮어있지만, 그는 빛이신 주님을 향하여 나왔습니다. 7장에서 그는 소극적으로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9장에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께 최고의 예우를 표했습니다. 그는 언제 거듭났고(구원받았고) 언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까? 그 어느 순간이나 사건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주님께 처음 나온 순간부터 구원의 여정을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두 방향의 움직임’이 대조됩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빛이신 주님께 나오는 자들의 움직임과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며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들의 움직임입니다(3:19~21). 우리가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오면, 주님은 우리를 일상의 삶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니고데모와 같은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제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와 다른 이에 대해 너무 조급하지 맙시다. 신앙생활의 스타일이나 적극성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맙시다. 중요한 것은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방향성’입니다. 당신은 지금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오고 있습니까? 어둠으로 물러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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